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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플레인스의 들소 사냥꾼
그레이트플레인스는 로키산맥 동부의 건조 지대다. 이 지역은 알래스카 남부와 캐나다 앨버타주, 매니토바주 남부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텍사스 남부에까지 이른다. 그레이트플레인스는 북쪽으로는 캐나다 순상지, 남쪽으로는 멕시코만 해안 지방, 동쪽으로는 넓은 삼림 지대에 경계해 있다.
광활한 지역에 뻗어 있는 그레이트플레인스의 기후는 지역마다 차이를 보인다. 미국 동부에 위치한 삼림 지대로 이어지는 동부 지역은 다른 곳에 비해 더 다습하다. 이에 반해 그레이트플레인스 서부는 훨씬 건조하다.
이 지역은 강수량이 적어 프레리라 불리는 특수한 스텝 지대를 형성한다. 서쪽으로는 로키산맥, 동쪽으로는 미시시피
강, 북쪽으로는 캐나다 북극 지방, 남쪽으로는 멕시코만 사이에 위치한 그레이트플레인스는 하나의 거대한 목초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몇몇 주거지역에서 확인된 바로는 플라이스토세 말엽 이곳에서 클로비스 문화인이 살았다. 하지만 최소한 기원전 9000년 이후부터 기후는 더 온난다습해졌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기원전 9000년에서 기원전 5500년 사이에 속하는 유적지가 몇 군데 발견되었는데 이 유적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아메리카 소아메리카 Bison를 영어에서는 버펄로라고도 부른다를 사냥했다는 사실이다.
아메리카들소는 북아메리카에 분포되어 있는 들소의 한 종류로 야생종에 속한다. 이 들소는 원래 유라시아에 서식했는데 빙하기 동안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육교를 건너 북아메리카 북부 지방에 정착했다. 이 동물은 보통 초식이며 특히 풀, 약초, 이끼, 지의류를 먹고, 다른 소보다 훨씬 물을 적게 먹고도 생존할 수 있으며 섭취한 물을 더 효율적으로 소비한다. 또한 여느 소와는 달리 강추위와 혹서에도 잘 견디기 때문에 그레이트플레인스의 자연환경에 이상적으로 적응했다. 아메리카 들소는 보통 무리 지어 산다.
서부의 프레리 지대처럼 매우 건조한 지역에 사는 들소는 새로운 목초 지대와 수원을 찾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한다. 이때 짝짓기 기간을 제외하고는 작은 무리들은 흔히 수천 마리에 달하는 커다란 이동 무리에 합류한다. 아메리카들소는 이런 식으로 수백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큰 무리로 함께 이동한 후 다시 작은 무리로 찢어진다. 오늘날 에는 이러한 이동을 하는 들소 무리가 아주 소수에 불과하지만 선사시대 북아메리카 그레이트플레인스의 들소는 당시 인간의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1만 년경 이 지역에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진출했을 때 이들은 거대한 들소 무리와 맞닥뜨렸고 이 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들소는 많은 고기를 제공해주어 중요한 식량 자원이 되었다. 그 밖에도 의복, 덮개, 방패, 밧줄, 아교, 쿠션 안을 채우는 내용물, 장신구, 용구, 소각연료를 만들기 위해 들소의 털가죽, 힘줄, 뼈를 이용했다. 들소를 사냥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리가 서부 영화에서 많이 보는, 말을 타고 또는 말과 활을 이용해 사냥하는 것은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에는 불가능했다.
말 타기는 스페인이 북아메리카에 들여온 것이었다. 선사시대에 인간은 들소를 대량으로 포획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썼다. 이 사냥 기술들 중 하나가 '버펄로 점프'라는 것이다. 역사 시대에 쓰인 설명에 따르면 우선 달리기가 아주 빠른 젊은 남자가 들소 털가죽을 뒤집어 쓰고 들소 머리를 머리에 쓴다. 이렇게 변장한 후 그는 낭떠러지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는 들소 떼에 몰래 접근한다.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몸을 숨긴 채로 사방에서 들소 떼를 에워싼다. 신호와 함께 사람들은 들소 떼를 덮치고, 들소들은 서둘러 도망가려고 한다. 이때 들소로 변장한 인디언이 들소를 낭떠러지 쪽으로 유인하고 들소들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는다.
이 스펙터클한 들소 사냥은 16세기에 쓰인 한 스페인인의 기행문으로 인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지만 이 방법이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사용되었다는 것은 고고학적 유적으로도 확인된다. 그레이트플레인스에는 기원전 9000년에서 기원전 5500년 사이에 속하는 많은 유적지가 존재한다. 이 유적지들에서는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 집단에게 들소 사냥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와이오밍주 동남부에 위치한 헬갭에서는 단기적이지만 반복적으로 이용했던 유적지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지들은 들소를 토막내는 장소였다.
원주민들은 일단 다른 곳에서 들소를 포획한 후 토막을 내기 위해 이 장소로 옮겨왔던 것 같다. 사람들은 고기만 취한 것이 아니라 영양가 높은 골수를 얻기 위해 긴 뼈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석기는 길고 끝이 뾰족한 규석으로 만든 첨두기였다.
이 무기는 매우 주의를 기울여 세공되었고, 특히 아랫부분이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형태는 이전 시기 클로비스 문화 첨두기와 매우 유사해 그 전통이 이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첨두기는 창에 장착돼 사용되었으며 이 무기를 이용해 들소를 사냥했다. 참고로 규석 첨두기의 발달 과정은 시간 순서에 따른 문화의 발달 과정을 잘 반영해 보여준다.
그레이트플레인스의 초원 지대는 봄과 초여름에 내리는 많은 비로 인해 톡톡히 이익을 본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풀이 특별히 많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습기가 땅으로 스며들어 뿌리까지 가닿을 수 있고 또 뿌리는 이렇게 해서 더 오랫동안 습기를 머금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풀을 뜯어 먹고 사는 들소 떼는 건조한 가을철에도 영양가가 풍부한 풀을 먹을 수 있었다. 위에서 묘사한 버펄로 점프 사냥법에 따라 들소를 사냥했다는 가장 오래된 단서는 뉴멕시코주의 폴섬에서 발견된다. 이곳의 가파른 절벽 아래에서는 죽은 들소가 30마리 넘게 발견되었다. 이들은 아래로 떨어진 후 즉시 도살되었다.
현재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버펄로 점프는 기원전 8000년대 중반경에 행해졌는데 당시 계절은 가을이었으리라는 게 거의 확실하다. 이곳에서 발견된 잔해는 들소들이 그 자리에서 도축되었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아마도 사람들은 도축이 끝날 때까지 며칠 동안만 이곳에서 머물렀을 것이다. 이곳을 거처로 이용했다는 단서가 전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들소 사냥은 도보로 행해졌기 때문에 특히 어려웠다. 이를 위해서 늘 계획을 세우고 조를 짜서 움직여야 했다. 즉 큰 집단이 협력해서 하는 사냥이었던 것이다. 혼자서 활과 화살도 없이 들소를 잡을 수는 없었다. 활과 화살과 같은 문명 기술은 훨씬 나중에야 나타난다. 이는 뒤에서 더 설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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