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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중독
바깥에서 보자면, 이것은 정말로 이상한 메시지처럼 보인다. 달리기는 주자가 자신의 취미를 찬양하는 차원을 넘어서 일종의 강박적 충동 같은 것이 된 것일까?
미국 캘리포니아의 정신과 의사인 윌리엄 글래서william Glasser는 《긍정적인 중독positive Addiction》(1976년)이라는 책에서 달리기 중독 현상에 관한 이론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은 두 해 전 <러너스월드>에 소개된 탐구 결과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글래서는 달리기가 새로이 번져나가는 일종의 중독 현상이지만 이 점이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래서에 의하면 살이 찔 때까지 먹는다거나, 골초가 된다거나 하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중독도 있지만, 중독에 빠지는 인간적인 경향성에는 밝은 측면도 있다. 몸과 마음을 파괴하는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 중독과는 달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원기를 북돋워줄 수 있는 중독들도 있다는 것이다.
글래서는 긍정적인 중독은 사람들의 정신력을 증대시킬 수 있었다. 긍정적인 중독에 빠진 사람은 그 습관을 즐기면서도 결코 그것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반면 헤로인 중독 같은 경우는 끊임없이 환각을 추구하면서 결과적으로 바로 그 중독을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 꼴이 되고 만다.
예상했던 대로, 그의 설문에 응답한 사람들 중에서 일주일에 적어도 여섯 차례 이상 달리기를 한다는 약 75퍼센트의 사람들은 정신과적인 정의에 따르면 중독자들이었다. "만일 당신이 달리러 나가는 일을 삼가야 한다면 고통스럽겠는가?", "당신은 달리는 것이 언제나 즐거운가?" 등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특히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이 중독자들은 자신들
의 습관 때문에 완벽한 행복을 느꼈다. 그들은 건강해지려는 의도에서 시작했지만 곧 올가미에 걸려들었고, 이제는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를 원치도 않는 상태가 되었다.
비자발적인 금욕 기간 중에 주자들이 드러내는 징후는 부정적인 중독자들의 징후와 비슷했다. 무감각, 멍한 상태, 식욕부진, 불면증, 두통과 복통 등의 금단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 중 몇몇은 밤에 다리 경련을 겪었고 우울한 기분을 느꼈다. 행복하고 밝았던 정상적인 사람들이 우울한 감정 앞에 무너져버렸고, 그런 느낌을 해소하는 방법은 오로지 조깅하러
밖으로 나가는 것뿐이었다.
지난 30~40년 동안 매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린 사람들의 사례는 많다. 이들은 개인적인 질병이나 부상과는 상관없이 그저 달리기가 좋아서 달리기도 했지만 자신의 개인 통산 기록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달렸다. 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1969년 유럽 마라톤 챔피언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마라톤 기록 2시간 10분 벽을 깨뜨린 론 힐Ron Hill이다.
그의 기
록은 2시간 9분 28초였다. 1964년 12월부터 2008년까지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렸으며, 가끔은 하루에 두 번도 달렸다. 물론 때로는 부상이나 수술 혹은 오랜 비행기 여행 때문에 달리기에 제약을 받는 일도 있었고, 그 때문에 건물 복도나 공항 대기실에서 실내 달리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루에 최소한 1마일은 꼭 달렸다. 그 가운데는 수술 직후에 목발을 짚고 1마일을 27분에 완주한 경우도 포함되어 있다. 인류 역사상 힐보다 더 긴 달리기 누적 거리를 기록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보통 직장에 달려서 출퇴근을 했고, 훈련 기간이 아닐 때에도 편안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달리기 중독 증세는 금방 드러나지 않는다. 중독자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특정 수준의 건강 상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중독자가 되기까지는 대개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나이 든 사람들이 좀 더 빨리 중독되었고, 중독 증세는 노년이 되더라도 어쨌든 달릴 수 있는 능력만 된다면
그대로 지속되었다. 심지어 감옥에 들어가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날마다 달리기에만 집착하며 운동장에서 하루를 보내는 죄수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능한 한 가장 먼 거리를 달리기 위해서 교도소 담장 가까이의 딱딱하게 포장된 트랙 위를 달리곤 했다. 그들은 그똑같은 주로를 해마다 매일같이 달렸다. 조깅은 많은 죄수들에게 중요한 치유법이자 환영할 만한 중독이 되었다.
어떤 주자들은 부상을 입었을 때 자전거에 의지했다. 그러나 자전거 타기는 달릴 때와 동일한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그런 만족감은 실제 몸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었고, 글래서는 달리기가 인간의 원초적인 활동이라고 믿었다.
애초에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움직여야만 했던 것처럼, 움직이고 싶은 심원한 욕구가 인간에게는 잠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본능적으로 달리는 모습을 지적했다.
글래서가 보기에, 달리기는 긍정적인 중독의 모든 기준을 충족시켰다. 그것은 자발적인 활동이고, 실행하기 수월하며, 정신적인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혼자서도 할 수 있으며, 당사자에게 개인적으로 충분한 가치를 발휘한다. 긍정적인 중독은 성공의 느낌을 제공하여 중독자로 하여금 그 일을 계속하도록 격려한다. 게다가 주자들은 달리기를 하는 동
안에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달릴 때 자기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달리기 중독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사람은 결국은 달리기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글래서의 연구는 고양된 경험들에서부터 무언가 찜찜한 느낌의 사례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들을 밝혀냈다. 예를들어, 스물네 살의 티모시 찰스 매스터스rimothy Charles Masters는 이렇게 말했다. "달리기 훈련 시간을 놓치면 꼭 나 자신을 실망시키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는 다음번 달리기 시간이 올 때까지 죄책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만일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면, 살이 찌고, 게을러지고, 무감각해진다고 느꼈다. 그들이 저지른 죄를 우울한 기분과 무거워진 몸으로 처벌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거스르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이지, 신이나 종교의 교리를 어기고 있
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조깅족들을 달리게 만드는 무언의 힘은 특정한 몸무게나 몸매에 대한 갈망이며, 그들은 대개 시간이나 개인 기록에는 느슨한 태도를 보인다. 훈련에 방해를 받는다는 것은 이러한 자기 환상의 꿈을 성취하는 일이 지연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과식과 과음은 이 과정을 아예 거꾸로 되돌려놓을 수도 긍정적인 중독이라 하더라도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 너무 적게 먹거나 혹은 너무 많이 먹고 토해버리는 행동과 같은 식이장애로 인해 병적으로 야위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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