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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모든 핀란드인의 핏속에 스며들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인들의 달리기의 기적을 설명해보고자 노력했다. 핀란드인들이 이른바 '의지력sisu'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인종들보다 달리기에 더 잘 적응했던 것일까?

 

핀란드 최대 일간지 <헬싱겐 사노마트 Helsingen Sanomat)는 핀란드 운동선수들의 신화를, 힘든 노동과 육체적인 노고에서 크게 다를 바 없는 그 나라 소작 농부들에 빗대어 한껏 부풀렸다. 다른 많은 나라들이 그런 것처럼 핀란드에서도 사회·경제적인 엘리트가 일반 국민에게서 끄집어낸 특정한 양상들을 높이 치켜올려 그것들을 국민성으로 다시 포장해내는 방식
으로 민족적인 신화를 선전했다. 핀란드의 엘리트들은 하층민들의 피땀어린 노고가 만들어낸 따뜻한 불빛을 쬐고 있었던 것이다.

 

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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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많은 지역 공동체들은 농업과 임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헬싱겐 사노마트> 지를 비롯한 여러 신문들은 산업 시설과 현대적인 인프라의 부족이 오히려 스포츠 경기장에서 큰 성취를 이루어낸 힘이 되었다고 보았다. 경제적 약점이자 미국과 스웨덴으로의 대량 이민의 원인이기도 했던, 산업 시설과 다양한 직종의 부재가 달리기 분야에서 핀란드의 비장의
무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고된 노동은 핀란드인의 미덕이었다. 거친 임야에서 일하는 핀란드인의 이미지는 전 세계로 퍼졌다. 핀란드인들을 자연스러운' 운동선수들 이라고 부를 때, 여기서 언급된 사람들은 소작농 출신 혹은 낮은 계급의 사람들을 뜻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스포츠가 학술적인 연구와 연관되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핀란드인들이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종종 최고의 핀란드 운동선수들은 예닐곱 살 때부터 힘든 육체 노동을 해왔다고 일컬어진다. 힘들게 일하는 농촌 청년들에게는, 핀란드 출신이건 다른 나라 출신이건 간에 대표 선수가 되어 대회에 참가하면서 스포츠에 며칠을 온전히 허비한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1930년대에 독일인 자크 슈마허 Jack Schuhmacher는 핀란드 달리기의 기적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 나라의 풍광과 물리적인 조건을 근거로 들었다. 핀란드의 기후와 지형이 그 나라 사람들에게 끈기와 이른바 '의지력sisu'을 선사해주었다는 것이다.


달리기는 모든 핀란드인의 핏속에 스며들어 있다. 누구든 이 순결하고 심원한 숲과, 그들 특유의 붉은색으로 칠해진 농가와 어우러진 이 탁 트인 기름진 들판과, 나무들이 우거진 저 산등성이, 호수에 살며시 내려앉은 끝없이 푸른 지평선을 보게 된다면, 흥분을 느끼며 전율할 것이고, 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날개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가벼운 발로 이 북유럽의 풍광 속을 몇 마일이고 몇 시간이고 달릴 수밖에 없다. 

 

누르미와 그를 닮은 사람들은 숲 속의 동물들과 같다. 그들은 저 깊은 곳의 강박적인 충동 때문에, 매혹적인 신비로 그들을 유혹하는 꿈같이 기묘한 풍경 때문에 달리기 시작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아들들을 자극해 거의 초인적인 업적을 성취하게 만든 것은 기록을 세우거나 칭찬 혹은 명예를 얻으려는 욕구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세운 경이적인 기록들은 대지에 감사를 표하는 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만일 기후 조건이 성공의 이유라면 양차 대전 사이에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도 똑같이 훌륭한 주자들을 배출했어야 옳다. 스웨덴은 훌륭한 성적을 유지했지만, 인구수 면에서 핀란드와 상당히 비슷한 노르웨이는 한참 뒤떨어졌다. 노르웨이에는 장거리 달리기에 대한 폭넓은 문화적 토양이 없었다. 

 

노르웨이인들은 훈련도 많이 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노르웨이의 전문가들은 과도한 훈련으로 인한 체력 소진의 위험성을 경고할 정도였다.


핀란드인들은 가장 열심히 훈련했고, 또한 당시로서는 가장 지능적으로 훈련했기 때문에 최고가 되었다. 그들은 최고의 후원 조직을 갖추고 있었고, 최고의 노력을 쏟아부었다. 양차 대전 사이에, 그리고 그 이전부터 수십 년간, 많은 핀란드인들은 단순한 환경에서 자랐고 장거리 달리기에 꼭 필요한 육체적·정신적 강인함을 길러왔다.

 

그들은 숲 속의 작은 농가에서 살았고, 성장하면서 걸어 다닐 일이 아주 많았으며, 들판에서 일을 했고, 도마를 쓰면서 몸을 구부렸다. 자연의 힘이 그들에게 강점을 주었다. 

 

그러나 이것이 핀란드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학교까지 먼거리를 걸었으며, 어린아이들도 대개 노동을 했다. 슈마허의 관점은 핀란드인의 평판과 그들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로부터 형성되었다. 국제 대회에서 그들은 수줍어했고, 과묵한 성격과 우수에 찬 눈길로 유명했다. 그들은 드넓은 육상 경기장에 들어서면 돌연 자신감으로 돌변하여 표출되곤 했던 겸손함을 지니고 있었다. 

 

핀란드 주자들의 주변에는 그들의 침묵과 서툰 말재주로 인해 한층 강렬해진 아우라가 감돌았다. 물론 이 같은 아우라
는 이국적인 미지의 대상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쉽게 사변에 빠져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핀란드의 경우에는, 핵심 권력자들이 해외에서 생겨나 떠도는 신화들을 국민 정체성 형성의 기본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널리 보급된 핀란드의 달리기 문화가 그들이 거둔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었지만, 장거리 달리기가 핀란드인의 국민성 안에 들어 있는 무언가에 와 닿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숲속에서 했던 고된 벌목 작업의 현대적인 변형인 셈이었다. 전 세계에 무언가를 보여주고 조국에 월계수를 가져온 것이다. 긴 거리는 사우나에서 보내는
시간과 같다. 사우나에서 중요한 건 가능한 한 최고의 온도에서 최장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당장 그 일이 벌어질 때는 괴롭지만, 끝나고 나면 달콤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참아내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핀란드의 달리기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한 순간을 골라내기란 불가능하다. 아마도 가장 위대한 순간이라 느껴질 법한 사건은 1952년 여름에 핀란드가 개최한 헬싱키 올림픽이 아닐까 한다.


스타디움은 개회식을 보러 온 관중으로 가득 찼고, 핀란드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선수단이 입장하고, 모든 선수들이 줄지어 행진한 후 선수단별로 자국의 깃발 뒤에 가서 정렬했다.


그러고 나서 모든 사람이 기다리던 순서가 찾아왔다. 올림픽 성화가 도착한 것이다. 성화는 수월하게 달리는 한 작은 남자의 손에 높이 들려 있었다. 그의 주법과 긴 보폭은 친숙했다. 그 주자는 달리는 내내 엄숙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를 환영하는 기쁨에 찬 함성이 핀란드 여름날의 하늘을 가득 메웠다. "파보 누르미!" 그 이름이 스타디움 전체로 울
려 퍼지고, 라디오 중계자의 목소리는 그 장면을 세계 곳곳에 전했다.

 

핀란드 '의지력' 의 상징인 바로 그 남자였다. 머리카락은 많이 가늘어졌지만, 여전히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활력이 넘치고 신비로웠다. 수만 명의 관중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고, 나이 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박수치며 환호할 때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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