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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발걸음
고고학적인 근거들이 우리에게 이유를 알려주기 훨씬 전부터, 그리고 문명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달리기를 해오고 있다. 사냥을 비롯해 생존 투쟁의 또 다른 실천적인 측면들은 인간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해준다. 장소를 이동하는 이 근본적인 방법은 시대와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인간은 수많은 이유 때문에 달린
다. 목숨 때문에 달리는 어떤 사람과 유복한 조깅 애호가의 차이를 한번 생각해보라.
가장 오래된 문헌들에 따르면 이집트와 수메르에서 신성한 왕족의 달리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곳에서 왕들은 신들을 달래고 자신의 왕국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 달렸다. 그리스인들 역시 경주를 통해 신들과 소통했다. 그들은 또한 달리기가 도시국가의 방어를 위해 꼭 필요한 것만큼이나 개인적인 발전에도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수천 년 동안 주자들은 특수부대원이나 전령으로서 군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달리기는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인 기능을 지녔고, 주자들은 전장에서 만큼이나 평화기에도 사회의 중요한 연결고리였다.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는 달리기가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신화적인 것이었다.
그런 최후의 부족들 가운데 하나인 멕시코의 타라후마라 부족은 아직도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달리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인도에는 길이 없는 지역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전령 주자들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은 여전히 종을 울려서 자신들의 도착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달리기는 18세기와 19세기에 유럽에서 사뭇 다른 형태의 오락거리를 제공했는데, 주자들은 속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고 매혹시키기도 했다. 영국인들은 경주에 돈내기를 도입하고 초 단위까지 정밀하게 기록을 측정해 달리기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명도 널리 퍼뜨렸는데, 그중에는 스포츠를 통한 인격 형성이라는 영국식 접근법
도 포함되어 있었다. 산업사회는 능률과 측정 가능한 진보를 요구했고, 이러한 요구는 스포츠 분야로도 새로이 옮겨 갔다. 달리기는 좀 더 조직화되었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시간에 얽매인 사람들의 일상사에 의미를 제공해주었다.
올림픽 대회의 재개로 인한 국가간 경쟁에서, 핀란드는 국가 건설을 위해서 그리고 민족적 특성과 정체성의 상징으로서 달리기를 의도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나라였다. 훗날 다른 나라들도 이런 측면에서 핀란드를 뒤따랐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달리기는 대중들을 적극적으로 사로잡지 못했다. 달리기란 그저 보거나 읽는 머릿속의 추격전이었으며, 그것의 자명한 표어는 그저 '더 빨리' 였을 뿐이다. 20세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주자들은 스스로 고통스럽게 만드는 악취미를 가진 괴짜들로 간주됐다. 그들은 달리기가 심오한 내면의 만족을 준다면서 다른 사람들은 별로 알아주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해낸 사람들처럼 자기들끼리 무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많은 의사들은 달리기가 심장이나 다른 내장 기관에 해를 끼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1960년대가 도래해서야 비로소 조깅이 건강에 좋은 운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평상시에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과체중의 사람들에게 조깅이 몸무게를 줄일 수 있는 적절한 방법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달리기는 건강 유지와 몸무게 조절을 목표로 하는 생활 양식의 일부가 되었고, 운동에 할애된 일상의 여유로운 막간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기쁨이자 의무였으며, 다양한 부수효과를 불러일으킨 유행 현상이었다. 조깅은 심장에는 많은 도움이 되지만 무릎과 다른 관절에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것은 잇단 부상을 야기했고,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조깅광신자들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잘한 통증들에 시달렸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대체로 부적절한 신발을 신고 형편없고 비경
제적인 주법으로 달리면서 오솔길과 차도로 떼 지어 몰려 나갔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실험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익숙하지 않은 몸무게의 하중과 스트레스에 대해 선행지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 능력 곡선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전 세대 사람들 같았으면 벌써 한참 전에 육체적인 경쟁을 포기해버렸을 그런 나이에 말이다. 조깅의 물결이 지구상의 모든 곳을 휩쓸고 지나갔던 것은 아니며, 그것은 대체로 서구 세계의 특징이기는 했지만, 두 발로 경쟁하는 수많은 조깅족들의 습격을 완전히 피해 간 나라는 거의 없다.
올림픽의 날 달리기 대회 The Olympic Day Run 1894년 6월 23일 파리에서 국제 올림픽 위원회가 설립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87년에 처음 개최되었다. 해마다 이 대회를 위해 전 세계의 주자들이 한데 모인다. 심지어는 몽골처럼 집단 달리기와 별 연관이 없는 나라에서도 수만 명이 이 행사에 참여한다.
몽골에서는 1988년 같은 날에 여러 곳에서 개최된 이 행사에 100만 명의 인구 중 무려 25만 명이 참가함으로써 인구 대비 세계 최고 참가율을 기록했다. 최근 10년간 중국은 전례 없는 경제 성장과 생활 수준의 극적인 상승을 경험했다. 2008년에 중국 성인 인구의 4분의 1이 과체중이\었고, 문명의 발달에 따른 현대병이 일상화되었다. 중국인들은 어느 정도 미국식 생활 양식을 모방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수많은 건강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마도 다음번 조깅의 물결은 중국에 몰아칠 것이다.
달리기에는 뭔가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어른들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어린애 같은 활동이며, 아무데서나 느낄 수는 있지만 오로지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의해서만 고양될 수 있는 자유의 감정을 제공한다.
직접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호소력을 발휘하는 훌륭한 주자의 모습 속에는 무언가 아름다운 요소가 들어 있다. 주자가 무척이나 깨끗한 자세로 대지를 가로질러 물 흐르듯 미끄러져 나갈 때 근육들의 우아한 비상과 멋진 조화는 실로 인상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움직이고, 느껴야만 하는 방식이다. 어쩌면 우리는 결국 그렇게 많이 진보한 것이 아니며, 진실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생물학자들은 우리가 달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인간으로 계속 살기 위해 우리는 엄청나게 걷고 달려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느 한 곳에 주저앉아 있다가 기계로 운반될 수밖에 없는 게으른 피조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달리기나 걷기 같은 운동은 좌뇌와 우뇌의 교류를 증진시켜 인간의 주요한 특징인 창의력을 향상시킨다. 사람들이 운동을 통해 얻는 깊은 만족감은 점점 더 기계화되어가는 이 세계 속에서 우리의 생물학적 본성을 일깨워주는 여러 가지 요소들 중 하나이다.
아이들을 보라. 그리고 아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본능에 따라 달리기를 하는 그 방식을 유심히 보라. 현대의 주자들은 원시인들이 생존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했던 일들을흉내 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원시인과는 매우 다른 의미에서 단지 인간
으로서 우리의 삶을 위해 달리고 걷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를 훨씬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현대인의 운동 불균형을 바로잡아주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주자가 실제로 염두에 두고 있을 리는 거의 없지만, 그는 아프리카에서 우리 조상들이 생존을 위해 사바나를 가로질러 달렸을 때와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
도 케냐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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