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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켜쥘 수 있는 손과 자갈 석기, 아프리카의 원시 호미니드

현생인류 진화사는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학자들은 늘 호미 니드라 불리는 영장류에서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는 어지럽게 얽힌 인류 조상들의 가계도를 더 정확히 그리게 해줄 새롭고도 놀라운 증거를 기다린다. 이와 관련해 중요한 정보를 담당하게 된 분야로 오래된 DNA를 연구하는 고고유전학이 있다. 하지만 그런 연구를 통해 인류의 진화 과정이 항상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복잡하게 꼬이기도한다. 고고유전학 연구는 안정된 기반을 구축하기까지 아직 더 많은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 알다시피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체는 95퍼센트가 일치한다. 

 

인류
인류

 

이 사실이 인간이 침팬지의 후손임을 의미하진 않지만 최소한 인간과 침팬지가 1000만 년에서 500만 년 전 머나먼 과거의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공통된 조상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확인해준다.

 

'현생인류가 지금의 인간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조상이 직립보행을 시작했고 더불어 이들의 두뇌 용량이 커지고 얼굴 골격이 평평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 모두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게서 나타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아프리카에반 퍼져 있었으며 이들의 출현은 현재 약 300만~4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그림 1>, <치도 1) 최초의 유적은 차드 호 분지에서 나왔다. 남아프리카 타움에서 발견된 유적은 그보다 조금 후대에 속하는 것으로 50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모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이 처음부터 직립보행을 완전하게 할 수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300만 년 이전에 출현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가장 초기 형태 인류조차 지금과는 다른 나름의 보행 방식을 취했을 수 있다. 그들이 생활했던 곳은 수목 밀도가 높지 않은 숲 지대였고 처음에는 여전히 호미니드의 생활 습성을 지녔을 확률이 매우 높다. 이들은 나무 위에 머무르는 일이 많았고 잠을 잘 때는 특히 그랬다. 하지만 이따금 땅 위에서 직립으로 걸을 수 있었다. 이들이 직립으로 걷는 방식은 이후 시간을 거치며 점점 더 발전한다.


하지만 직립보행 그 자체는 인간으로서 발휘하는 성과가 아니라 인간이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직립보행과 다양한 방식으로 움켜쥘 수 있는 손은 일차적으로는 인간이 동물로서 갖고 있는 특성에 속한다. 손은 직립보행으로 인해 갑자기 완전히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점점 더 섬세해진 것이다.

 

움켜쥐는 것이 가능한 손은 손끝의 감각능력이 발달하면서 일종의 인지 기관이 되었다. 손과 인지능력의 밀접한 연관은 오늘날 일상생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말할 때 자기도 모르게 동반되어 나오는 손동작을 보라. 본능에 좌우되는 발과 달리 손은 행위의 기관이다. 손을 통해인류의 조상은 행동하면서 인식했고 손과 손가락을 이용한 신호를 통해 동족과 일종의 의사소통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시각장애 아동들을 관찰한 결과를 보면 말하기와 손은 언어과정에서 서로 통합적이라는 것 을 알 수 있다. 개념적 의미의 언어는 신체언어와 함께 동반되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되면서 생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언어 표현이 얼굴 및 손동작을 보완하거나 대체했지만 이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사용된다.


오우리의 먼 조상들은 손에서 더욱 섬세한 감각을 얻으면서 무엇보다 묘사적 설명능력을 발달시켰다. 이는 다시금 얼굴 표정과 몸동작의 발달을 촉진했다. 이러한 발달의 결과로 결국 언어적 조음, 나아가 음악적 조음까지 가능하게 됐다. 이 복잡한 과정의 전개는 두뇌의 꾸준한 발전과 결부 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결국 분석적 지능과 문제 해결에 적합한 통합적
인 사고가 형성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이 되는 과정과 불가분하게 인과적으로 결부되어 있었다.


현생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에 관한 증거는 대부분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다. 관련 증거들로 볼 때 현생인류의 직립보행은 매우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증거물로는 간헐적으로만 발견되는 여러 다양한 신체 부위에서 나온 뼈들이 있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된 유골에는 '루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유골은 에티오피아에서 출토되었으며 390만 년에서 32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추측건대 루시는 약 25세의 나이에, 키는 105센티미터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들의 몸무게는 30킬로그램에서 40킬로그램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남자는 키가 130센티미
터에서 140센티미터를 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직립한 침팬지보다 약간 더 큰 정도였다.


약 300만 년 전에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곳곳에서 기후 변화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이 지역은 더욱 건조해졌고 부드러운 열매와 이파리로 식랑을 제공해주었던 숲들이 사라졌으며, 대신 사바나 형태의 초원이 점점 더 넓게 자리를 잡아갔다. 나무들은 드문드문 볼 수 있는 정도였다. 그결과 이용 가능한 먹이의 형태가 바뀌었고 이 지역에 서식하고 있었던 동
물상 특정 지역이나 수역에 살고 있는 동물의 모든 종류 또는 총체은 비교적 질긴 풀, 씨앗, 뿌리를 식량으로 삼아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이러한 생활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식물성 식량만 섭취했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뛰어난 씹는 기관을 갖고 있었다. 어금니의 씹는 면은 과도하게 확대되어 있었고 씹는 근육이 너무 발달한 나
머지 두개골 윗부분에 일종의 볏 모양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직립보행과 씹는 기관의 확대 같은 근본적인 변화는 모두 수십만 년 또는 수백만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된 자연스러운 적응과정의 결과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겪기로는 그 시대에는 인간계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던 동물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시기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얼마만큼 침팬지 수준을 넘어서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하지만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그림 1>)가 나타난 시기는 최초의 석기의 출현보다 50만 년 앞서 있다. 이 최초의 인공물은 약 27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발견된 곳은 동아프리카에 있는 올두바이 협곡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 최초의 물질문명 시기 전체는 올도완oldowan이라 불린다. 학자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최초의 올도완 시기 도구를 만든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쪽으로 점점 더 기울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아직 제시되지 못했으며 최초의 도구를 만든 인류는 호모 루돌펜시스와 호모 하빌리스라고 거론되고 있다. 어쨌든 앞으로 연구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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