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플레인스의 들소 사냥꾼 그레이트플레인스는 로키산맥 동부의 건조 지대다. 이 지역은 알래스카 남부와 캐나다 앨버타주, 매니토바주 남부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텍사스 남부에까지 이른다. 그레이트플레인스는 북쪽으로는 캐나다 순상지, 남쪽으로는 멕시코만 해안 지방, 동쪽으로는 넓은 삼림 지대에 경계해 있다. 광활한 지역에 뻗어 있는 그레이트플레인스의 기후는 지역마다 차이를 보인다. 미국 동부에 위치한 삼림 지대로 이어지는 동부 지역은 다른 곳에 비해 더 다습하다. 이에 반해 그레이트플레인스 서부는 훨씬 건조하다. 이 지역은 강수량이 적어 프레리라 불리는 특수한 스텝 지대를 형성한다. 서쪽으로는 로키산맥, 동쪽으로는 미시시피 강, 북쪽으로는 캐나다 북극 지방, 남쪽으로는 멕시코만 사이에 ..
수렵 채집 생활에서 가축 사육과 농경생활로의 전환 나일강 계곡 유적들로는 중석기시대 수렵 채집 생활자들이 신석기시대 최초의 거주민이 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기 힘들다. 사냥, 고기잡이, 채집을 하면서 살았던 아석기인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더욱 잘 적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정말 기존 생활 형태를 하루아침에 다른 형태로 바꿨을지는 의문스럽다. 어쩌면 처음에는 기존 방식이 존속하는 가운데 식물 경작과 가축 사육이 점진적으로 이루진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추측은 그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농경생활자들이 최초로 정착한 장소가 그 이전 시기에 수렵 채집 생활자들의 야영 장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나일강 계곡에 살았던 최초의 신석기인이 남긴 유적을 보면 한 장소에서 일정한 기..
플라이스토세 말엽의 수렵 채집 생활자 플라이스토세 말기 나일강 계곡에서는 사람들이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다. 당시 기후는 더욱 건조해져 초원 지대가 메마른 사막으로 바뀐 상태였다. 하지만 나일강의 상습적인 범람은 강 양안에 비옥한 지대가 발달하게 했고 이는 후기구석기인에게도 매력적인 생활 환경이었다. 이 시기 나일 계곡에 존재했던 유적지는 대부분 크기가 작은 편이었고 한 시기에만 반복해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사람들은 나일 강가의 습지와 풀밭에서 식물을 채집했다. 그중에서 단연 인기 있었던 것은 사초, sedge의 일종인 향부자였다. 비옥한 지대에 면해 있는 모래 언덕에서는 사냥을 했고 나일강의 풍부한 어장에서도 식량을 마련했다. 와디 쿠바니야에서 발굴된 유적은 후기구석기시대 말엽 나일..
개인의 재발견, 유럽의 비커 문화 중부 유럽에서 농경생활이 시작된 이래 그 발달 과정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연구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자료가 매우 제한적인 경우가 허다하고 부분적으로 이 시기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구분 또한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기원전 5000년대 중반 이전 띠무늬 토기의 성립 시기부터 기원전 2000년대 초 신석기 말기가 종식될 때까지는 어느 정도 지속적인 발전 궤적을 그려볼 수 있다. 중부 유럽 이북에서는 후기 신석기시대부터 주거 집단의 사후 매장을 위해 거석 무덤이 세워졌다. 이 풍습은 지중해 서쪽에서 프랑스와 브리튼 제도를 거쳐 북독일, 스칸디나비아 남부, 북독일의 푼넬비커 문화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지역적으로 다른 특성을 보였던 거석 문화는 기원전 3000년대 말 종말을 고..
북독일의 평야 지대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남부 북독일의 평야지대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남부에서는 기원전 4000년대에서 기원전 3000년대로의 전환기 동안 후기 신석기시대가 시작되었다. 에르테뵐레 문화에 이어 푼넬비커 문화가 성립되었고 이와 더불어 생산 경제로의 이행이 일어났으며, 식물 재배와 가축 사육, 구리 가공 기술이 도입되었다. 기원전 3000년대 중반 이후 바퀴와 소가 끄는 수레도 출현했다. 동물이 끄는 쟁기(아드Ard라고 함)도 도입되어 경작이 훨씬 효율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외알밀, 에머밀, 보통밀, 보리 등을 경작했고, 소, 양, 염소, 돼지를 가축으로 길렀다. 새로운 경작지와 방목지를 얻기 위해 불을 놓는 일이 점점 더 많아졌다. 이러한 경향은 기원전 2800년경 푼넬비커 문화 후..
바덴뷔르템베르크의 페더제습지에 위치한 제키르히-아흐비젠 유적지 신석기시대 초기에는 각 가정이 각자의 농경지를 따로 갖고 있었지만 기원전 3000년대가 되면서 농경지를 한데 연결해 경영하게 되었다. 당시 소가 끄는 쟁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넓은 농경지에서 훨씬 효과적으 로 사용될 수 있었다. 주거 가옥 뒤에 있는 언덕에는 숲이 펼쳐져 있어서 베리류 등의 채집 열매, 버섯, 헤이즐넛, 사과, 향신료를 위한 식물과 약초 등 다양한 식물을 제공했고, 가축을 풀어놓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또한 숲에는 사슴, 노루, 오록스, 멧돼지와 그외 다른 야생동물이 살고 있어서 사냥터로도 이용되었다. 그 밖에 새로운 재배 작물이 도입되었는데 그중 파슬리, 딜허브의 일종, 레몬 페퍼민트, 셀러리 ..
마리차 문화 후기 마리차 문화 후기, 트라키아의 스타라고라 지역의 아이 나르에서 발견된 채굴장과 빈차 문화 초기에서 후기의 이행기로 추정되는 시기, 철문 협곡 근처에 있었던 광산인 루드나 글라바는 이미 기원전 4000년대 중반경에 구리가 채굴되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야금술의 개별 단계와 가공 방식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기원전 4000년대 후반기인 동기시대 후기에는 코자데르멘, 구멜니차, 카라노보 IV기, 바르나 문화들이 존재했다. 이 문화 시기에는 망치 도끼, 손도끼, 끌 등 구리로 만든 중량급 도구가 대량 출토되었다. 이 도구들은 틀 두 개로 주조되었음이 확실하며 금속 가공에 대한 발전된 지식 없이는 제작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가구가 각자의 필요를 위해 이러한 도구를 직접 제작한 ..
고정된 장소에서의 정착생활, 개혁, 사회 분화 기원전 4000년대가 시작될 무렵에 판노니아 평원 동부에서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알트-띠무늬 토기 문화가 새로운 문화권에 의해 해체되었던 이 시기에 티서강과 그 지류를 따라 전 지역에 주거 구릉지가 형성 되었던 것이다. 이후 이곳에서는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 사람들이 거주했고, 이를 티서 문화라 부른다. 이 시기의 채색 토기에는 지역에 따라 독자적으로 발전된 장식 스타일이 나타났고, 이 때문에 헝가리 동부 문화 집단들을 더 상세히 분류할 수 있다. 이 문화들은 가장 특징적인 유적지(모두 주거 구릉지였음)를 따라 명명되었는데, 예를 들면 최스헐롬 문화, 헤르파이 문화, 고르저 문화 등이 있다. 이 시기는 유럽 동남부에 주거 구릉지가 가장 많이 퍼졌던 때였..